지금은 대전의 한 기관의 강의장 강사 대기실에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점심시간을 90분이나 드려야 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거든요. 이번주에 제가 느낀 것들이 많아서 짤막하게 편지를 써 보려고요.

저는 강사라는 직업이 딱 그래요. 약 20년을 돌이켜보면 어쩌다 하게 되었고, 잘 하고 싶었고,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가, 막상 하니까 또 이걸 메인으로 삼고 싶진 않고. 그러다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수준이 된 것 같아요.

이젠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저는 강의 하는 게 너무 좋고, 꽤 잘 한다고요.

막연히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삶이 좋을 거라는 환상이 있었어요. 10여년 전, 부산에 강의를 가게 되었는데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서울로 돌아갈 순 없지! 생각해서 강의 끝나고 굳이 해운대를 찾아갔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할 건 없더라고요. 혼자서 밀면 한그릇 먹고 바로 부산역으로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도 몇차례 더, 지방에 강의를 갈 일이 있었는데 일 하러 가는거지 여행하러 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더 중요한건 저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무언가를 보고, 체험하는 것 보다 사람을 만나러 가거나, 아예 며칠을 쉬러 가는 게 더 좋은 사람이라는 걸 그 당시엔 몰랐네요.

전업 강사가 되면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곤 합니다. 대기업 연수원은 서울 외곽에 있는 경우가 많고, 또 기업 워크샵을 떠나면 강원도 등 관광지에 있는 호텔로 가야 하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운전면허도 없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하루를 통으로 빼서 왔다갔다 하는게 너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더 큰 이유는 '전문가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였어요.  20대의 저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삶의 이슈였는데요. 막상 강사가 되고, 주변에 강사 활동을 하는 분들을 보니 그냥 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책에 있는 이야기나, 어디서 보고 들은 것들을 쉽게 짜깁기 해서 전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퍼스널 브랜딩 강의안 진짜 한땀한땀 고민해서 만들었거든요? 근데 나도 뭔가 입만 떠드는 강사처럼 보일까봐 무섭더라고요. 저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목표를 '강사'가 아니라 '전문가'로 잡았어요. 전문가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테니까요. 그렇게 퍼스널 브랜딩과 브랜딩의 전문성을 갖기 위해 강의를 줄이고 컨설팅과 기업 프로젝트를 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엔 '강의를 하는 건 쉬운데, 강사가 되고 싶진 않아요.' 라는 말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습니다. 강의는 가끔, 평생 컨설팅 하고 사업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돌고돌아 지금 저는 '강사'로 저를 소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사업보다는, 컨설팅보다는 강의를 하는 게 좋고 평생 강의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열심히 전문성을 쌓은 덕분에, 어디 가서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각종 경력과 레퍼런스들이 생겼기에 '전문성에 대한 결핍' 없이 이 일을 즐기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역시 버릴 경험은 없네요 :)

이번주에는 지방 강의가 많았어요. 월요일은 곤지암 리조트, 수요일은 강릉의 한 호텔, 지금은 대전의 연구단지에 와 있습니다. 과거랑 달라진 건 남편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저희 남편은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요. 덕분에 제가 지방에 강의가 있을 때 마다 함께 다니고 있어요. 곤지암 가서는 소머리 국밥을 먹고, 강릉에서는 1박 2일 호텔에 묵으며 닭강정도 먹고, 테라로사 본점과 박이추 선생님의 보헤미안 커피집도 다녀왔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강의라 어제 대전으로 함께 넘어왔고요.

혼자 다닐 땐 너무 의미없는 시간이었는데 남편이 같이 다니니까 여행 다니는 것 같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어요. 지방 강의 싫어해서 항상 거절했는데, 이 시간이 즐겁게 느껴진다는 게 새삼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저처럼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인데도 나의 환경이나 가치관 등 외부 요인 혹은 내 마음의 무언가 때문에 싫다고 느껴질 수 있어요. 물론 정말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라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결국 저처럼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믿는데요. 그래도 미리미리 생각 해 보면 좋잖아요. 이 일이 진짜 싫은건지, 어떤 이유만 제거되면 혹은 환경이 바뀌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인지 말이에요. 

A부터 Z까지 모두 다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요? 과정중에 좋은 것도, 싫은 것도 포함되어 있을텐데요. 좋으면 무엇이 좋은지, 싫으면 어째서 싫은지 꼭 생각해 보세요. 이왕이면 글로 써 보시면 더 도움이 되실겁니다. 그리고 싫은 이유를 제거한다면, 그게 바뀐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보세요.

저는 '전문성'이 중요한 사람이었잖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전문가로 보이고 싶은 욕구'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는데요. 그렇다면 그 욕구를 먼저 채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하겠죠? 이상적인 연인을 만나기 위해선 나부터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그걸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